이인미

 

부산, 영도다리

 

부산이란 도시의 질감은 부지런히 한국의 근대를 기록한 책처럼 읽히는데, 특히 도시가 길게 뻗어있다는 점에서 마치 두루마리 그림같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증언하는 역사적 유적이나 건물이 비교적 적게 남아있긴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부산의 도시건축은 주로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피난민들과 그들의 안식처가 되었던 6.25전쟁 이후의 건물들이거나, 산업화가 한창일 때 농촌에서 갓 올라온 공장 노동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었던 수없이 많은 고층건물들, 그리고 특히 아시아의 중산층을 끌어 모으기 위해 해운대 주변에 세운 미래주의 건물들로 특징지어진다.

 

지난 몇 년 동안 이인미는 부산의 급속한 도시 변화를 지켜봐 왔다. “배움의 정원”에서 그녀는 시리즈 작품들 중에서 두 점을 전시한다. <또다른 액자>는 전형적인 아파트 단지 내부에서 영도다리의 잘려나간 모습을 지켜 본 작품인데, 영도다리라는 역사적 건축물의 운명을 담았다. 일제 강점기, 부산항을 가로지르며 1931년에서 34년 사이에 세워진 영도다리는 기술적인 면에서 걸작이었다. 큰 배가 지나 갈 때마다 하루에 두 번씩 다리를 들어올려지는 승개교였는데, 다리가 세워지자 크게 소문이 났고 그 참에 전국각지에서 몰려든 구경꾼들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한국전쟁(1950-53년) 중 전국에서 수십만 명이 부산으로 피난을 왔고, 영도다리는 피난 통에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는 일종의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하지만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쓰라린 진실을 확인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1960년대 중반이 되자 영도다리는 ‘기계적 수명’을 다 마쳤다. 그 후, 이 오래된 다리를 해체하여 더 큰 규모의 다리를 새로 짓자는 건립안이 결정 되었다 (새로운 영도다리는 현재 건설 중이다).

 

이인미의 카메라는 다리를, 그러니까 건설 당시부터 남아있던 다리의 부분들을 조심스럽게 해부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는 테크놀로지라는 괴물이 시간이 흐르면서 나름의 영혼을 축적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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