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린 구루에온

 

자각의 시대에 대한 기념비

 

크고 어두운 갤러리 안에 하얀 사슴뿔이, 그것도 무리를 이룬채 갤러리의 바닥 전체를 덮고 있는 거므스레한 액체로부터 드러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기념비”라고 부른다. 도대체 무엇을 기념한다는 말인가?

 

사슴뿔은 도자기로 만들어졌다. 둘 다 깨어지기 쉽고 값이 비싸다. 검은 빛의 액체에 비친 사슴뿔의 모습이 거의 유령과 같은 비물질적 외형에 부가된다. 이것은 기념비라기보다는 파멸의 풍경처럼, 심지어는 묘지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특별한 아름다움의 비밀을 지니고 있다.

 

유령 같은 사슴뿔의 외형은 3차원으로 만들어졌다. 이것은 1930년대 말에 멸종된 숌부르크 사슴이다. (작가의 고국인) 태국의 평원지대에 살던 늪지 사슴으로서, 그 뿔이 납작하고 털이 많이 나있는 게 특징이다. 작가는 파리 자연사박물관에서 이 동물을 만났다. 박제된 것이었지만 그것의 우아함에 왠지 매혹되었고, 과거와 현재의 연결을 느꼈다(결국 박물관의 존재 이유는 과거와 현재의 연결이다). 그 때 작가는 절망하는 많은 현대인들처럼, 사슴도 가끔씩 홍수가 난 태국의 들판을 도망쳐야 했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먹이를 찾기 위해 언덕을 올라가면서, 사슴은 그 약점을 다 드러내고만다. 숌부르크 사슴은 자신의 뒤를 쫓아오는 것이 동료 사슴이 아니라 사람이었음을 너무도 늦게 깨닫는다. 그 사람은 총을 쏠 수 있는 거리 내에 쉽게 도달하기 위해 사슴뿔을 머리에 썼다. 홍수가 난 들판, 사람, 사슴, 이 모든 것들이 기념비에서 연결된다. 그런데 한 동물의 멸종에 관한 역사를 놓고 볼 때, 과연 도자기 사슴은 사슴 자체 혹은, 사람,아니면 변장한 사냥꾼의 탓인가? 여기서 실제로 기념되고 있는 것은 숌부르크 사슴이 아니다. 다름아닌 세상의 부를,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파괴하는 데 쓰이는 인간의 지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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