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현

 

일상인

 

박자현은 자기 친구와 가까운 친척들, 즉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드로잉의 밑그림으로 이용한다. 사진들 가운데 일부는 나이 많은 여인의 벌거벗은 몸에 우유를 부어 마치 강물처럼 흐르게 하는 치밀한 계획으로 연출사진도 있다.

 

드로잉 작업에서 박자현은 검은색 잉크로 수천 개의 작은 점을 찍어 종이를 뒤덮는다. 엄청난 시간을 들이면서 스스로를 몰입시키는 이 세심한 과정은 불교의 명상기법(만다라)과 그리 다르지 않다. 사실 자아의 개념이나, 한 개인의 내밀한 핵심이라 부를 만한 것이 이 드로잉에서 쟁점이 된다. 그럼에도 박자현이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다소 모호하다. 무언가 정제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어떤 그늘이 드리워져 있기까지하다. 이 작품의 제작기법은 ‘위협을 받고 있는 자아’라는 인상을 준다. 초상화는 다양한 농담의 회색조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분명한 윤곽선이 없어서 자아와 세계가 명확하게 분리되지도 않는다. 이런 구별 불가능함 때문에 박자현의 ‘보통 사람들’은 무척 수동적인 상태에 놓이는 것 같다.

 

불안정한 정체성의 이미지는, 여인의 얼굴 대부분을 가리고 있는 담배연기라든가 때로는 잘 보이지 않는 눈동자 등의 디테일로 인해 더욱 강조된다. 마지막으로, 하지만 역시나 중요한 것은 완벽한 외모에 집착하는 문화를 생각할 때, 점묘화 기법은 매끈하지 않거나 얼룩진 피부의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한국을 지배하는 미와 외모의 기준에 반해, 박자현의 초상화는 이 사회에서 온전한 삶의 자아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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