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Garden of Learning

배움의 정원

 

 

1.

“배움의 정원” 전시에는 정해진 테마가 없다. 그 대신 우리는 하나의 진행 규칙을 따른다. 그건 바로 일종의 ‘즉흥 연주‘다. 한국에 대한 사전 경험이나 이해가 없던 내가 복잡한 문화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그것이었다. 아울러 나는 위험과 실패, 예상치 못한 결과를 동반할 예술적 과정에 밀착해 있었다.
첫 번째 단계로, 2012년 초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람들을 공개 모집하였다. 가급적 부산에 거주하는 사람을 원했다. “배움위원회”라는 이름 아래 전시기획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300장 이상의 지원서가 들어왔고, 부산시립미술관 강당에서 열린 첫번째 미팅은 지원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쉽지 않은 전시기획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총 인원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50여 명의 핵심 멤버들은 끝까지 남았다.)
아시아 특유의 위계적 질서를 감안해서, 나는 배움위원회로 모인 사람들이 한국, 부산, 삶, 일, 사랑, 혹은 이전 부산비엔날레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고 외국인 총감독인 내 앞에서 굳게 입술을 다물지 않을까 조금 염려했었다. 그렇지만 이런 의구심은 이렇다 할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 나는 한국에 대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어떤 것을 기대해야 하는지, 2012년 부산에서 어떤 모양의 전시가 유효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 있는지 등의 질문들에 대해 속수무책이었으니, 나의 이 혼란스러웠던 상태가 당시 배움위원회 위원들에게 어떤 동정심을 불러 일으키지 않았나 싶다. 허나 그들은 점차 아주 적극적으로 발언하기 시작했다. 틀에 박힌 한국의 정신적 특징, 급진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상황 사이에서의 사회 분열과 그로 인한 마찰에 대한 각 개인의 생각이나 느낌을 서슴없이 털어놓았다.
두 번째 단계에서 나는 김희진 큐레이터의 도움으로 한국 작가들을 만나러 다니기 시작했다. 길예경씨의 소개로 만난 아트스페이스 풀의 디렉터 김희진씨는 능변한 어드바이저였다. (길예경씨는 지난 도큐멘타12의 매거진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던 저널 ‘볼BOL’의 편집부 일원이었다.) 김희진씨는 한국 미술계와 내부의 권력 구조, 특성 등에 대한 나의 깊은 이해를 도왔다. 뿐만 아니라 더 큰 틀에서 한국을 이해하여 궁극적으로 이 비엔날레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해결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특히 나는 1980년대에 이미 자신들의 예술언어를 확고하게 다진 한국 작가들을 만났다. 또한 앞 세대의 민중미술과 모노크롬 사이의 깊은 틈을 그대로 물려 받고, 그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나의 세대의 작가들, 혹은 그 다음 세대의 작가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 후에 적정한 변화가 뒤따랐다. 한국을 여행하고, 작가들의 작업실도 방문하고, 배움위원회 위원들과 토론도 했다. 또한, 전에 나와 함께 전시를 했었던 작가들을 부산비엔날레에 초대하였다. 또한 데미안 크리스팅어Damian Christinger, 니코 드 올리베이라Nico de Oliveira, 울리 직Uli Sigg, 장 칭Zhang Qing에게서 부산비엔날레 전시와 잘 어울리거나, 한국에서의 경험을 작품 창작에 실제로 반영할 수 있는 작가들을 여럿 추천 받기도 했다. 그들은 부산비엔날레 참여가 확정된 이후 부산에 와서 배움위원회 위원들에게 자신들의 이전 작업과 주요 관심사를 소개했다. 이때 배움위원회 위원들은 주로 그들의 발표를 듣고 자신의 구체적인 상황과 관련지어 보았고, 그 후 작가들과 오랜 시간 토의도 했다. 특히, 이모진 스티드월시Imogen Stidworthy가 신체와 음성의 관계를 다룬 작품을 발표했을 때에는 한국의 샤머니즘 이야기가 계속 흘러나왔고, 긴 토의가 끝나자마자 배움위원회 위원 몇 명은 스티드월시를 김해에 있는 굿당으로 안내했다. 배움위원회 미팅을 통해 생긴 즉흥적 결과와 그 이후 이어진 많은 이야기와 전개는 “배움의 정원” 전시에서 볼 수 있다.

 

 

 

2.

배움위원회의 팀워크는 단단했다. 사실 이러한 팀 구축은 미팅에서 생긴 여러 종류의 갈등으로부터 오히려 도움을 받았다. 세대간에 누가 먼저 발언하며, 누가 대표를 하고, 여러 안건에 대한 결정권은 누구한테 있는지 등에 대한 갈등이었다. 또한 부산비엔날레 전시에 부수되는 형식적 제약들에 대해서도 모든 사람들이 고민했다. 즉 전시의 의미와 기능뿐만 아니라 전시의 장소가 문제였다. 부산시립미술관은 어마어마하게 큰 컨벤션센터 벡스코 옆에 있다. 벡스코 건물은 과거 항구도시, 제조업 중심도시 부산의 미래 서비스 산업을 상징한다. 그 맞은편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백화점이 자리하고 있다. 백화점에서 상품들을 광고하고 진열하는 방식은,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다른 어느 곳보다 화려할 것이다. 이에 반해, 사실상 부산시립미술관은 이 두 건물의 압도적인 물리적 크기와 경제력 앞에서 기를 펴기 어렵다. 그렇다면 미술관에서 가장 가까운 주변 지역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할까? 아주 자연스럽게 팽배해 있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바와 뚜렷하게 상충하는 관습적 차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페티시즘적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서도 각 작품의 중요성을 보여줄 수 있는 전시 방식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배움위원회 미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부산은 수십년 동안 새로운 도시에 대한 계획을 끊임없이 세워왔기 때문에 도시 풍경 곳곳에 공사중인 건물들이나 공사장들이 산재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산시립미술관을 마치 공사중인 건물처럼 보이게 하자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배움의 정원”의 최윤식 건축가는 비교적 저렴한 재료들을 이용하여 공사에 사용되는 비계 형태로 건물 외부를 감싸는 방안을 계획했다. 또한 건물 외부에 사용했던 것들과 똑같은 재료들을 건물 내부에도 사용했다. 이는 기존 박물관의 전시 요소들에 그저 순응했을 때 생길 수 있는 효과 이상으로 각 작품들의 존재감을 최대화 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벽을 직접적으로 건드리지 않기로 결정하고, 그 대신 어떤 장치가 필요한 곳에만 외부에 썼던 것과 동일한 재료를 쓰기로 했다. 하지만 결국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렇더라도 할 수 있는 한 건물의 묵직한 존재감이나 그 특성에 방해 받지 말고, 예상할 수 없는 곳에서 불현듯 뚜렷하게 나타나는 작품들간 관계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하자고 중지를 모았다. 그렇게 해야 어느 정도까지는 하나하나 계획하고 계산할 필요없이 작품들 그 자체로
흥미로운 관계를 생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아주 막바지에 테마가 정해진다면 모를까, 전시기획을 시작했던 초기에 정확한 테마를 정하지 않았던 이점은 바로 이것이다.)

 

작품들 사이의 예측불가능한 관계들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기념비적’ 형식의 특성을 지닌 작품들을 예로 들어 보겠다. 각각 다른 모양새의 이 작품들은 프란츠 카퍼Franz Kapfer의 <법 앞에서 Before the Law>, 함경아의 <오데사의 계단Odessa Stairs>, 이본 아란베리Ibon Aranberri의 <끝없는 대륙 Perpetual Continent> 이네스 도우약 Ines Doujak의 <오뜨 꾸뛰르/불 Haute Couture/ Fire>, 곤잘로 디아즈Gonzalo Díaz의 <닝겐-푸타 윈쿨 Ngen-füta winkul>, 노재운의 <대나무 숲의 유령들Ghosts in Bamboo Forest>, 전상철의 <공간2012–리듬Space 2012 – Rhythomos>, 메리 엘렌 캐롤 Mary Ellen Carroll의 <N°18>, 아이 웨이웨이의 <레바 Rebars> 그리고 지몬 박스무트의 <지금은 As Matters Stand>가 있다. 이 작품들은 이미 물리적으로 “배움의 정원”의 많은 부분을 차지 한다. 이렇게 많은 작품들의 형식적 공통점들은 그저 우연히 나타난 것일까? 대규모 전시의 기획을 맡은 큐레이터들이 주로 공적 자금의 지원을 받는다는 사실은 전시 진행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기념비는 그것의 공식적 형식으로 인해 아주 특별한 기능을 지닌다. 관습적으로 기념비의 현존은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구조에 속하거나 그것을 지속시키는 특정한 사람 혹은 사건을 증거한다. 프란츠 카퍼의 작업과 그 작업에서 나타나는 단군의 역할을 특별히 북한이라는 맥락안에서 생각해보자. 비록 그러한 증거들이 작가의 기념비적 사람 혹은 사건에서 유래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북한과 단군, 이 두 개의 증거들은 작가 개인의 작업 세계에 대한 맥락 없이 그 자체로도 이미 많은 것을 의미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작가들이 만든 기념비적 작업들을 ‘반(反)기념비적’ 태도로 이해해야 하는가? 한때 억압적이었던 이데올로기적 구조를 지적으로 드러내고, 억눌렸던 기억들을 가시화하는 것이 기념비적 작품들의 기능일까? 원칙적으로, 나는 ‘예스’라고 말하겠다. 만약 우리가 작가들이 선택한 주제들 (도우약의 노동 군사화 문제, 함경아의 1980년대의 트라우마적 폭력들) 뿐만 아니라, 예술적 형식까지 참작한다면 더 놀랄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정사(正史)에 등장하는 기념비적 기념비는 상징적인 내용을 고정하는 것이 그 목적인데, 집어 삼켜 담기에 너무 많은 것을 지녀서 비대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반면에, 반(反)기념비적인, 혹은 어쩌면 내재적으로 허술한 기념비는 한 번에 두 개의 목표를 달성해야만 한다. 즉, 그것은 문화적 무의식에 접속해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그런 감각적 실체들을 과거 내에서의 고립화로부터 지켜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치유되고 다시 회복되어 등장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과거를 현재로 확장하는 예술적 제스처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목표는 정사(정치적으로는 중요할지 몰라도, 사소한 것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그 정사 자체의 선언에 동원되는 형식(문서, 박물관 디스플레이 등등)에 대한 진보적 비평 없이는 성취될 수 없다. 내재적으로 허술한 기념비는 필연적으로 하나의 모호한 사건으로서, 형식의 유연성을 유지한다. 그 모호함이라는 것이 약함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관람객들이 들어설 수 있는, 더 나아가 어쩌면 결사적으로 그들을 필요로 하는 어느 접점을 가리킨다. 자, 이모진 스티드월시와 노재운의 작품을 살펴보자. 이 두 작품은 모두 여자 귀신들 혹은 초자연적인 유령들, 그리고 모호함의 육화를 다룬다. 두 작품 모두 어떤 고정된 형식을 가지고 있을법한 실체들을 붕괴시켜버린다. 스티드월시의 작품에서 그 형식은 정체성-정치적 주체가 될 것이고, 노재운의 작품에서는 현대적 시간성이다. 작품에 들어서서 작품을 완성하고, 그리하여 그것의 모호함을 해결하는 일은 여전히 관람객의 특권으로 남는다. 어떤 단호한 의미를 보유한 예술작품에 들어선다는 것은 희생을 요구한다. 그리고 예술과의 모든 진정한 만남이 진지하고 가치있는 노력이 되는 곳에서는 비엔날레 유형 전시에서의 축제 분위기를 완벽히 논박한다. 미술관에 들어서기 전에 사물함에 우산을 보관해 두듯이, 우리는 “배움의 정원”에 들어서기 전에 자기-동일성이라는 개념을 버려야 한다. 미학적 체험은 변형적인 체험이기도 하면서, 그 자체 ‘무’이기도 하다.

 

 

글 : 로저 M. 뷔르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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